▲ 25일 대전의 한 전통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국환 기자 gotra1004@cctoday.co.kr
“올해는 작년보다 더 심각해요.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 거라지만 매출이 정말 많이 줄었습니다.”
추석명절을 앞둔 26일 오후 대전에서 방문객이 많기로 유명한 도마큰시장은 대목을 앞두고 있단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시장 입구에서 수년간 건어물과 제수용품을 판매하는 송모(63) 씨는 진열된 물건을 뒤적거리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손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된 듯 진열대 놓인 물건은 뿌연 먼지가 앉아있고 방문객들도 관심 없는 눈빛이 역력했다. 가끔 손님이 오더라도 가격만 물어보거나 김 몇 봉지를 사가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은 제수용품 가게만이 아니었다. 생선 가게와 정육점 등 어느 점포 가릴 것 없었다. 상인들은 대목을 앞두고 장사가 도통 안 되는 상황을 ‘명절 탄다’고 말했다. 긴 추석 연휴에 돈을 쓰려고 오히려 대목에 소비를 줄인다는 얘기다.
경기가 좀처럼 녹지 않는 가운데 살충제 계란 여파와 물가 상승, 긴 연휴까지 겹치며 시장 상인들의 한숨은 끊일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정모(55) 씨는 “추석 전에는 명절 조기·갈치가 잘 팔리는데 요즘 물가도 오르고 경기도 어려워졌는지 작년만 못하다”며 “시장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손님이 많기 때문에 경기가 어려워지면 그 표시가 다른 곳보다 금방 난다”고 말했다.
대전 서구 한민시장도 어려운 상황은 마찬가지다. 아파트 단지 인근에 있어 다른 시장보다 손님이 붐벼야 정상이지만 시장 곳곳엔 한산한 기운이 흘렀다. 한산하다 못해 시장 모퉁이에는 손님 한 명 없는 텅 빈 골목도 있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차모(46·여) 씨는 “명절을 앞두고 있지만 좀처럼 매출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며 “연휴가 길어진 탓도 있고 전체적으로 소비 심리가 많이 위축된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화재피해 건물 철거 막바지에 돌입한 대전 동구 중앙시장도 이 같은 흐름을 피하진 못했다. 다른 시장에 비해 방문객은 비교적 붐볐음에도 판매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시장에서 떡을 판매하는 전모(56·여) 씨는 “대목인데도 장사가 안되고 있다”며 “진열대에 있는 떡이 전부 오전에 만든 건데 거의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25일 소비자교육중앙회 대전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인 가족 기준 차례 상 비용은 전통시장이 18만 4573원으로 가장 저렴했다. 이어 대형수퍼 21만 2494원, 대형유통매장 22만 8983원, 백화점 30만 2145원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이국환 기자 gotra1004@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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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우려와 기대를 낳았던 이른바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 100일을 맞았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청탁과 구태한 접대 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청탁금지법은 청렴사회로 향하는 첫 발을 내디뎠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시행 초기 법을 제정한 국민권익위원회의 현실에 맞지 않는 유권해석과 함께 침체한 경제 사정과 맞물리며 심각한 소비위축으로 이어져 곳곳에서 부작용도 속출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대한민국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터져 나온 부정·부패를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며 이와 직결되는 골프와 식사 등 과도한 접대 문화를 크게 줄이는 계기가 됐다.
실제 학교 교사들에게 암암리에 주던 촌지 문화나 제약회사 리베이트 관행도 거의 사라졌다. 연말 송년회나 단체회식이 크게 줄어 소위 ‘흥청망청’이란 회식문화도 개선됐다는 반응이다. 최근 한국행정연구원이 한국리서치와 현대리서치에 의뢰해 356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85%가 청탁금지법 시행에 찬성했다. 부조리와 부패 해소 등 청탁금지법의 긍정적 효과가 부작용보다 더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권익위에 접수된 위반 신고는 지난 2일 기준 부정청탁 45건, 금품 등 수수 59건, 외부강의 7건 등 총 111건으로 집계됐다.
긍정적 효과도 분명하지만, 우려하던 소비위축도 현실화됐다.
대표적으로 과거 예식장과 장례식장의 상징이던 화환과 조화가 자취를 감췄고, 연초 인사철인 데도 축하 난을 보내는 문화도 사라졌다. 때문에 화훼업계는 매출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사라진 접대 문화도 소비위축의 중심이 됐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지난달 20~26일 전국 709개 외식업 운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84.1%는 지난해 12월보다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지난달 첫 번째 법원 판결도 나와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16일 춘천지법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55·여) 씨에 대해 ‘떡값의 2배’인 9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A 씨는 청탁금지법 시행 첫 날인 지난해 9월 28일 지인을 통해 자신의 사건 담당 경찰관에게 4만 5000원 상당의 떡 상자를 보냈다. 경찰관은 퀵서비스로 떡 상자를 돌려보낸 후 이런 사실을 춘천경찰서장에 알렸다.
청탁금지법 시행 100일 맞은 현재 곳곳에서 정착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여전히 유권해석을 두고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일례로 스승의 날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줄 수 있는지 여부다. 이를 두고 권익위는 당초 원천적으로 불가하다고 밝혔지만 과잉해석이라는 비판이 일자 최근 학생 대표가 카네이션을 주는 것은 허용된다고 말을 바꿨다.
국회의원들의 대표적인 예산 챙기기 행태인 ‘쪽지 예산’도 기획재정부는 청탁금지법 취지에 비춰볼 때 위법 행위라는 입장이다. 권익위는 처음에는 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가 “소관 부처 입장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조재근 기자 jack333@cctoday.co.kr